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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주택 | 익청각, 益淸閣

위 치 서울 종로구 삼청동 2-4외 4필지
구 분 신축
용 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468.57 m2 지상층수 1
건축면적 221.48 m2 지하층수 1
건폐율 47.54 % 구조 RC+목조
연면적 445.11 m2 용적율 42.35 %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아크로그로시, 지사천정지, 장판지
작품설명 益淸閣과 Crystal house 사람들은 한옥에서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옥을 지니고 산다고 한다. 한옥이라는 우리 전통 목조가옥에서의 삶은 그래서 고달프고 비경제적이고 때맞추어 손보지 않으면 누옥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옥에서 산다는 것은 이시대 - 전통이 해체되고 어설픈 서구화에 휩싸인 우리의 주거방식이 혼재의 극을 달리고 있는 이 세기말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주거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거나 또는 단순히 멋을 부리기 위해서 한옥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세기에 주인이 될 우리보다 훨씬 현명하고 지혜로운 후대를 위하여 우리 선대들의 삶 자취를 보존하여 그들에게 텍스트로 남겨 주는 일 그 자체가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대로부터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물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 판단이 전부인 것처럼 자연을 훼손하고 도시를 재개발하여 시간의 흔적을 없애버리고 그나마 남아있는 전통의 기억마저 모두 지워버리는 우를 지금까지 범하여 왔다.

삼청동주택은 세기말의 이 땅에서 건축하는 사람들(나를 포함하여)에게 ‘전통과 현대의 병치’라는 명제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과 자문(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갖게 하는 일이 되고있다.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에 있어서 서구 모더니즘의 문제’ 즉 혼재와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건축문화 부재의 문제는 이제와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늘 우리 건축가들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이 문제 뒤에 항상 ‘전통’이라는 단어에 대한 죄의식이 따라 다니거나 숨어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모더니즘이라는 젊고 매혹적인 양색시에 넋을 빼앗기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부담이 되어 오버랩되는 시골집 구석방에서 침침한 호롱불빛 아래 길쌈을 하고 있
을 조강지처의 모습, 그 길들여지게 보아온 세숫대야 같은 납작하고 동그란 얼굴이 언제나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전통건축을 일반 사람들이 문화재관리국과 돈있는 사찰이나 문중들에 의하여 과보호되어 중창된 왕궁과 사찰 그리고 서원건축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잘못된 인식도 문제지만 죄의식을 떨쳐버리고자 고색창연한 사찰과 문닫힌 서원을 오르락거리며 그 속에 숨어 있는 비의(秘儀)를 찾아 현대 한국건축의 새지평을 열어보려는 노력또한 재주없는 우리세대의 대부분에게는 헛된 일로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전통건축을 가지고 어찌해 보려는 요행수를 바라는 생각을 지우고 전통건축 속에 내재되어 있는 공간의 미학과 자연속으로 파고드는 그 안존한 기품들을 음미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작심한지 이미 오래이다. 그리고 우리 현재의 삶이 그속에 담겨졌을 때 전통건축이 본래 가지고 있는 미학과 기품이 폄하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게 할 수 있는 궁리만으로 남은생을 바치기 족한 것이다 라고 스스로를 타일러 왔었다.

지난 1989년 나는 전통 주거속에 우리 식구의 삶을 옮겨담는 시도를 하였는데 그동안 전통가옥인 우리집 한옥은 나와 우리식구 모두에게 삶의 기쁨과 품위를 가져다주었다. 즉 전통건축은 오늘날에도 분명 살아있는 건축으로 우리식구가 생활을 통하여 그것을 확인한 셈이다. 쓰지 않는 왕궁과 서원에서 우리가 늘 관자의 입장에서 전통건축을 보게되는 것과 그 속에서 생활을 하며 전통건축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전통가옥의 보존과 보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소위 말하는 한옥 수리 전문가로 자처하고 나서게 되었다. 삼청동주택의 주인은 내가 살고있는 계동 한옥을 여러차례 드나들다가 그만 한옥의 미학에 도취된 사람이다(나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한옥에서의 삶은 서로가 마주보는 장(場)이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채와 채가 마주보며 담을 사이에 두고 울안과 울밖이 마주하며 길을 사이에 두고 집과 집들이, 개울을 사이에 두고 동리와 자연이 마주하는 것이다. 삼청동주택의 전통한옥 부분인 익청각은 담을 사이에 두고 삼청공원과 감사원, 청와대 뒷산의 풍경들이 만들어 주고있는 자연의 파노라마를 마주하고 있다. 익청각의 대청에서는 계절마다 섬세한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건넌방에서는 보름날 달밤의 미소조차 살짝 열린 장짓문 사이로 엿볼 수 있는 숨막히는 생활속의 미학이 있다. 따라서 이 오랜 세월동안 대물림한 지혜로운 조상들에 의하여 다듬어진 전통가옥의 논리와 실용성을 뛰어넘는 형식과 직관의 미학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옥 보수작업은 최소한의 불편함과 위생처리 그리고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손을 댄 보온과 방풍을 제외하고는 원형 그대로를 보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여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주택은 네부분으로 나뉘어져 구성되어 있다. 앞으로 말년까지의 삶을 보낼 중년의 부부가 거처하는 한옥, 지하의 살림공간 - 이 곳은 아이들이 분가하여 또다른 세대의 중년부부가 되었을 때 그들 차지가 될 생활공간 이기도 하다.
노부모와 아이들의 분화된 주거공간 - 이 곳은 자식들이 분가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다가구 용도로 다른 세입가구를 들일 수 있도록 큰방 하나가 건식 (Built-in) 공법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밖에 진입부와 주차공간, 기계실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삶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집 또한 이에 대응하거나 변모를 겪게 된다. 양식건물의 내부가 가변성을 가진 건식 (Built-in) 공법으로 계획된 것은 이러한 배려에서였다. 건축가가 계획한 대로 강요되는 삶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건축가는 삶이 여러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항상 출구를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다시 닫혀져 내부에서 원상태대로 결합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집에 대한 원래 생각들이었다.

삼청동주택은 진입도로에서 한옥마당까지 약 7m의 표고차를 보이고 있다. 진입도로와 한옥의 고저차를 이용하여 진입 레벨에 주차장과 기계실을, 그 윗레벨에는 양식 주거공간을 펼쳐 놓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식 주거공간은 지하화되는 관계로 보다 많은 채광과 통풍이 주요 설계 포인트가 되었고 다양한 레벨 차이를 극복하여 유기적인 동선을 확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기존 한옥과의 연계문제는 시공시에도 수차에 걸친 설계변경을 요하였는데 그것은 한옥이 갖추어야 할 모양, 즉 마땅히 가져야 할 마당과의 단차(석자/尺)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따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돌출된 양옥(집주인은 크리스탈 하우스라 부른다)의 지붕은 바로 맞은편 자연의 바위에서 모티브를 인용한 것으로서 진입로 초입의 칠보사 문앞에서 바라보는 뒷산 북악의 연실봉 두 뫼의 형상을 따온 것이다. 내부공간은 독일의 뛰어난 디자이너 쿠르트 슈비터스 (Kurt Schwitters)의 메르쯔 바우 (Mertz Bau 1923)를 연상케하는 다각형 천정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방에 누워보면 주위의 가시나무 잎새를 스치는 바람의 손길이 보이는 듯 하고 소리없이 밤하늘이 찾아드는 그야말로 별빛 가득한 방이 되는 것이다.

한옥마당 지하의 생활공간은 상부의 한옥구조를 이어받아 일부가 오버랩되기 때문에 분할된 공간들은 구조상으로 약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한옥과의 연계 동선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계단과 연결되는 부위에 활처럼 구부러진 복도를 두었는데 이 곳은 조그만 그림들이나 가족사진들로 채워지는 집안의 작은 전시장이 될 것이다. 또하나 특기할만한 사항으로는 집주인의 간절한 소망으로 지하공간에 음악감상실이 마련된 일인데(집주인은 오디오 매니어로서 아마 이 공간이 가장 소중한 곳일지도 모른다) 이 지하공간은 대단한 음량이 밖으로 새나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또다시 겹겹이 막혀있다. 가족들을 위한 BGM음악은 거실 벽면에 미리 설계되어 붙박이로 되어있는 덴마크의 뱅 앤 올프슨 (Bang and Olfsen社)의 오디오 컴포넌트가 담당하고있다.

한옥구성은 매우 단촐하다. 커다란 안방과 건너방 그리고 별실로 꾸며져 있는 다실이 전부이다. 한옥수리를 하면서 공간을 재배치한 것은 안주인을 위한 작은 대청을 마련한 것과 그 옆의 작은 공간들을 분할하여 화장실과 목욕실로 만든 것이 전부이다.

한옥은 외형이 갖는 독창성과 그 형식에 관한 주장이 매우 강한 건물이어서 모더니티를 표방하고 있는 어떤 형태의 건축과도 공존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East와 West는 서로가 주체가 되던가, 배경이나 기단이 되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한옥의 내부공간은 참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포용력이 크다. 최고의 모던디자인이나 예술품 (Fine Arts)에 대하여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한옥의 화장실에 놓여진 필립 슈탁 (Phillipe Starck) 디자인의 세면기와 변기가 잘 어울린다는 사실, 마리오 보타 (Mario Botta)나 잉고 마오로 (Ingo Mauro)의 조명기구, 카씨나 (Cassina)의 가구들도 잘 짜여진 화문석이나 고가구들 못지않게 한옥이 잘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한옥의 창호는 우선 그 수에 대하여 몇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매번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한옥 부분인 익청각 한 채만 하더라도 문짝이 거의 200여짝이나 된다. 일일이 세지 않으면 믿지 못 할 일이다. 창호는 종전에는 띠살문으로 되어있었으나 모두 아자문(亞字門)으로 문양을 바꾸어 달았다. 간사이가 서로 다른 경우 기둥 옆에 측간살을 붙여 치수차이를 해결하였다. 대청마루는 처음 지어진 상태의 판재를 보수하여 그대로 썼다. 한옥의 안방바닥은 진흙을 사용하여 토방미장을 하였고 벽마감은 모두 한지를 발랐다. 외벽은 모두 회바름이다. 한옥의 목구조 수리는 모장원 대목이 맡았고, 기와는 와공 박윤구씨가 이었는데 처마지붕에 달린 챙은 옛것을 손보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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