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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강의동 및 도서관

위 치 서울 종로구 혜화동 90-1 외 5필지
구 분 신축
용 도 교육연구 시설 
대지면적 61758.9 m2 지상층수 3
건축면적 8754.87 m2 지하층수 1
건폐율 14.18 % 구조 RC
연면적 3702.57 m2 용적율 52.9 %
외부마감 적벽돌 치장쌓기, 동판 내부마감 인조대리석, 인조화강석, 아크로그로시
작품설명 신축된 도서관과 본관 강의동이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은 가톨릭대학 신학부의 새로운 명칭이다. 1992년 늦가을, 당시 가톨릭대학 총장이셨던 최창무 주교와 사무처장 경갑실 신부는 내게 건물의 설계를 부탁하는 자리에서 신학교 교수들과 이 학교를 졸업한 성직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컨센서스를 전하면서 설계시 꼭 유념하여 반영할 사항 몇가지를 당부하였다.

그것은 첫째로, 1920년 지어져 1970년대 초에 완전히 사라져버린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네오 고딕 양식의 박공지붕을 가졌던 옛 신학교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외관을 계획단계에서 고려해 달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보여준 빛바랜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혜화동 신학교 구교사를 부술때의 일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는데 벽돌 석장 깊이의 두꺼운 벽들과 좋은 재목이 쓰여진 마루와 지붕틀이 한꺼번에 보였던 3개층의 부서진 단면들, 그것과 함께 사라져간 품격있는 양식 건물의 아름다운 자태는 건축수업을 받기 전부터 매우 깊이 뇌리에 박히게 되었고 왜 이러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고쳐쓰지 않고 부셔버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었다. 그후 나는 과거 친일파의 거두 윤덕영의 집이었던 누상동 언덕받이의 언커크(Unkurk)사무실이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은사 윤일주 선생님과 함께 19세기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은 대저택의 타다남은 잔해를 조사하면서 또 한번의 사라져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러한 일들에서 연유되어 그 후 명동대성당의 보존 보수작업, 용산 신학교(한국 최초의 신학교로서 현재 성심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풍수원 성당과 치악산 끝자락 사기막 고개 너머 있는 신림성당, 그리고 최근까지 작업한 전주 전동성당의 복원 설계와 작업지도를 보수 같은 것을 바라지 않고 어떤 과외의 의무처럼 떠맡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건물들은 우리 고유의 전통양식이 아닌 서구 고전 스타일의 건물로서 개화기와 일제 강점하에 지어진 양식건물지만 나는 이 건물들이 그 시대 이 땅에 지어진 건물들이기에 우리의 또다른 건축역사로서, 지키고 보존해야할 중요한 문화재로 인식하여 왔다.

두번째 고려사항은 가능하다면 신학교에서 제일 오래된 느티나무들을 없애지 않고 설계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연 환경 보존과 건축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일치되는 것이어서 나중에 수위실을 지을때 나무 한그루가 수위실 옆 방문객의 대기 장소의 지붕을 뚫고 살아남아 해마다 잎새를 틔우게 되었다.

세번째는 옛 신학교 교수관(현재 주교관과 사제들의 숙소로 사용)의 시야가 막히지 않도록 배치계획시 같이 검토하되 학생들의 동선은 차단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외의 학교측 주문은 일반적인 것으로서 학교 재정 형편에 따른 공사비 절약 개념을 위주로 한 건물설계, 유지관리가 쉽고 에너지 절약형의 건물을 설계할 것 등 보편적 주문사항이 있었다.

배치
최초에 지어진 붉은 벽돌과 인방돌로 구성된 구 교사가 ↙자형의 건물이었고 이 건물에는 강의실과 기숙사, 도서실 등의 기능이 복합되어 있었다는 과거사를 풀이해보면 서측으로 면하는 건물과 남측으로 면하는 건물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측동을 도서관으로 사용할 경우 혜화동에서 삼선교 고개를 지나는 교통소음을 차단해야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수목들을 최대한으로 보존시키기로 하였다. 동절기를 제외하고 오래된 나무숲은 소음차
단에 대단히 뛰어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도서관과 강의동이 긴밀히 연결되기를 바라는 학교측의 바램은 단일건물로 계획되기를 바랐지만 도서관과 강의동은 구조계산시 하중산정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별동으로 처리하되 연결복도등으로 두 기능을 연결시키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은 연결 노대같은 조형적 형태로 의미가 축소되어 외부공간을 연계시키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뒷쪽의 기존건물인 주교관과 사제 숙소의 전망을 트이게하기 위하여 자연 도서관과 강의동 건물은 적절한 넓이로 간격을 두었고 밑으로 꺼
진 마당은 학생들의 동선을 차단할 수 있을뿐 아니라 지하층에 위치한 24시간 개방 독서실의 앞마당으로 또는 학교 축제등의 행사시 다양한 용도의 공간으로 쓰이도록 배려된 것이다.

처음에 선큰마당과 주교관 정원을 시각적으로 단절시키는 벽 사이에 물이 흐르는 것을 계획하였으나 유지관리상의 이유로 물대신 자갈이 채워지게 되었다.
선큰 마당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연결노대의 시각적 관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이러한 것은 꼭 한국 전통건축에 있는 ‘루’의 개념을 인용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동·서양의 건축에서 이러한 수법은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러한 것을 꼭 필요한 장소에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건물의 배치는 기존의 학교성당과 구 도서관 건물을 연대하여 큰 ↙자 형태로 운동장을 둘러싸는 모양으로 전체 교정의 질서를 잡아 나가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건물
건물의 외관재료를 선정하기 앞서 학교측이 요망하는 기억의 전승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였다. 과거의 복원이 아닌 과거를 상기시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모티브를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또다른 방향으로의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었는데, 나는 이러한 문제를 오랜 생각끝에 ‘과거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벽’을 설정하는 것으로 해결하자고 결론지었다. 기억의 벽은 과거의 건물처럼 두께를 가지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벽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내부까지 과거의 벽이 갖는 이미지가 파고 들어서 오늘의 공간과 기능에 침투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 형태는 어쩌면 가상 무대장치 처럼 또는 벽만 남은 폐허 뒤에 새롭게 이어붙이는 수법처럼 벽은 그 자체의 모서리(edge)로 한정되며 건물과 유리되는 시늉(Gesture)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벽을 구성하는 붉은 벽돌은 새로움을 상징하는 어떤 요소, 즉 표면의 반짝거림이나 통일된 색조, 쌓기방식의 단조로움 등을 거부하고 옛날부터 거기 그 자리에 서 있는 건물인 것처럼 표정을 짓는 모습이 건물의 표면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붉은 벽돌 자체를 몇번의 실험제작을 거쳐, 신학교에 맞는 원단을 만드는 기분으로 맞춤(주문생산)을 시도하였다. 나는 벽돌제작소의 기술진들에게 표면의 반짝거림을 없애기 위하여 줄무늬의 문양을 초기 소성단계에서 엣칭하는 방법을 쓰도록 하였고 선별작업시 소성온도가 다른 벽돌을 무작위로 섞이도록 하였으며 쌓기 방법 또한 옛 신학교의 조적방식대로 플레미쉬쌓기로 설계와 시방을 넣었다. 벽돌 사이의 마구리돌(Key stone)의 마감 역시 도드락다듬 마감의 와룡석을 사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건물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벽이라는 실체(Substance)에 내는 창이라는 내부공간으로 통하는 구멍(cavity)들이다. 왜냐하면 창들이야말로 그 내부에 무엇과 어떠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건축에서의 은유(metaphor)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벽은 과거를 상기시키지만 창은 오늘과 내일을 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처음 구상단계에서는 유리면이 마치 첨단 전자제품의 조작스위치 처럼 벽면보다 투명하게 프레임없이 약간 튀어나오게 하였다.(시공상의 어려움과 방수문제 때문에 벽면보다 오히려 약 2cm 가량 들어가게 되어 소기의 의도를 완전히 살리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과거의 조적벽이 갖는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하중의 전달을 창이 단절(일층의 창은 폭이 2배로 확장되어 위로부터 오는 수직벽의 힘을 소멸시키고 있다)하는 형상을 취하게 하여 벽이 기억의 전승이외의 다른 역할은 할 수 없다는 인식을 암시하므로서 그 벽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대, 다시 말해서 오늘의 미학으로 구축한 공간이 도사리고 있음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다소 현학적인 설명이 되겠지만 층간을 구획하는 2개의 화강석 띠(이것은 파라펫 상단의 누름돌과 그 크기를 같이한다)는 앞서 말한 수직력의 단절이 가져오는 시각적인 어색함을 완화시키는 쓰임새로 삽입된 연계사 같은 것이다. 즉 추상적의지는 이와같이 표상의 세계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절충과정을 겪게되는데 때때로 이러한 절충이 지나쳐서 건축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경우도 만들게 되는 때도 있다. 그러므로 섬세한 미학적 검증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내부공간
도서관 설계에서 가장 큰 주안점은 주변경관을 끌어안는 것, 즉 주변의 수목군과 빛을 내부로 끌어들여 신학교 도서관이라는 폐쇄적 이미지를 반전시키려는 데 주력했었다. 따라서 도서관 홀은 공간 크기 만큼의 거대한 전면 창으로 바깥의 수려한 경관을 실내로 인입시킬 뿐만 아니라 남측의 서고와 북측의 서고를 시각적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3층의 벽들과 숨겨진 방화문들은 2층의 개방된 서가들의 영향으로 마치 도서관 전체가 모두 개방된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느낌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몇 가지 보조역할을 하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은 노출된 남측계단과 북측 계단참 그리고 실내 브릿지등이다.

도서관 남측은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을 3면으로 면하면서 운좋게 살아남은 신학교의 역사 (큰 느티나무 두 그루)를 돌아가면서 빛과 함께 마주한다. 층수를 달리하며 보는 이의 시각은 변화하는데 가장 좋은 경관은 도서관 옥상일 것이다. 큰 나무의 가지들 때문에 옥상은 색다른 경지를 맛보며 작은 파티라도 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도서관 홀이 작은 실내악이 연주될 수 있는 장소로 쓰일 수 있듯이.

도서관 맨 윗층의 서가들은 박공지붕 형태의 천장과 천창채광 때문에 매우 시원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곳에 놓은 모든 서가들은 구 도서관에서 가져온 오래된 서가들로서 측면에 새로운 나무판을 덧댐으로서 새로운 건물과 어색함없이 잘 어울리게 되었다. 도서관의 지하는 24시간 개방하는 독서실과 휴게실 그리고 시청각 자료실과 귀중 장서고로 구성되어있는데 어느곳이나 지상층 만큼 밝고 경관이 잘 배려되도록 계획되었다. 다만 독서실의 서측창을 모두 밀폐형으로 한 것은 교통소음을 막기 위한 것이고 선큰마당 쪽에 프리커브 곡선으로 돌출되어 있는 창은 딱딱함과 지루함을 없애려는 시도
로서 역시 과거의 기억에서 탈피하려는 역할을 하고 있는 하나의 요소로서 작용한다. 건물선과 일치하지 않는 램프의 진입이라든가 건물정면의 중앙을 피하여 설치되어 있는 출입풍제실의 무늬강판의 다소 거칠은 쓰임새 역시 위와같은 맥락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아도 좋다.

학사동으로 불리우는 강의실 역시 개방공간의 분위기 연출을 목표로 한 것이다. 도서관이나 학사동 모두 계단에 특별한 관심을 두었다. 왜냐하면 최근에 나는 층과 층을 연결하는 계단에 층간 변위에 따른 시각적 즐거움이 계단을 오르는 수고를 상쇄하는, 즉 길의 연장으로서의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것에 즐거움을 부여하는 일에 부쩍 흥미를 갖게되었기 때문이다.

학사동의 상부에는 구조적으로 다소 지나쳐보이는 큰 공간이 있다. 이것은 신학교 전체 학생 450인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다목적 대강의실이다.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천창채광의 수법이 도입되어 낮시간은 불을 켜지 않아도 된다. 부속 홀 역시 북측 박공을 절개하여 자연광의 실내유입을 시도하였다. 계단실 상부 잔부공간을 이용하여 특별한 행사시 안내 카운터 또는 식음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하였다.

색채 계획
붉은 벽돌과 키스톤으로 쓰인 돌이 과거의 재료라 가정한다면 오늘의 재료는 이미 모두가 주지하는 바와같이 콘크리트와 유리, 그리고 철이다.
즉 과거의 재료와 오늘의 재료가 만나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색채의 적절한 선택과 통일성있는 재료의 절제된 혼입이다. 도서관 홀의 큰 서측창이 받는 풍압을 계산한 결과 보강을 위한 아이빔을 걸게되었고 나는 그것을 비례에 맞추어 커다란 붉은 십자가로 만들었다. 이름하여 보혈의 십자가 (Cross of Precious Blood). 그리고 남측 계단기둥을 푸른색(죄의 상징)으로 칠하여 좌도(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의 왼쪽 십자가에 매달려서 저주를 퍼부은 사형수)로 생각하고 북측 계단참의 가리개 벽을 노란칠을 하여 우도(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으로 간 골고타에서 회개하여 부활한 생명을 얻은 죄인)으로 상상하였다. 좌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 라는 거인처럼 영원히 무거운 하늘과 천정을 떠받치고 있다.

그 밖에 선택된 내부 바닥 마감재와 벽 천정 일체의 칼라 개념은 밝음과 맑음이 그 주제였다.
선큰마당으로 내려가는 벽면에 붙인 벽돌타일은 바로 과거의 재료에서 현재의 재료로 바뀌는 장면의 갈등을 다소나마 완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브론스 칼라의 유리를 선택한 것은 붉은 벽돌과의 조화 때문에 고집스럽게 주장한 것도 있지만 어쩌면 신학교 교정의 아름다운 황혼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리에 비치는, 두 팔에 모든 잎새를 떨구고 늦가을에서부터 이른 봄 새 잎이 다시 태어날 때까지 죽은 나신을 보여주는 오래된 느티나무 가지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숨을 죽이고 건물속에 스며든 또 다른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피어오를 봄, 그 부활의 광경을 머리속에 그리게 된다. 그리하여 저녁 노을속에서 건축은 자연의 거울이 되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동화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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