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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위 치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298-1
용 도 미지정 
작품설명 들어가기
-‘ 기념행위’의 현실‘: 의미 있는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시설’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대부분 그 역사를 체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 역사의 심층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핵심은 무엇을
기념할 것이며,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라는‘ 기념행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상상력을 이끌어 내려는 계획 의지 자체의 문제다.
-‘ 기념행위’와‘ 생성’: 설혹 그 시설에 의해 역사적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해도 과제는 남는다. 만일 그 내용이
일방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많은 시설들이 그러하듯 기념의 의미에 대한 지속적인 생성을 방해하고 소멸시킨다.
대상은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현재로 소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념행위’는 기념의 대상을 역사 속에 가두지
않는 생성적 행위여야 한다. 이미 합의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역사에 대한 능동적 해석을 유도해
냄으로써 수용자에게 일종의 역사적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이순신 기념관의‘ 기념 행위’: 어떻게 생성적으로 그를 대면하게 할 것인가? 오늘 그를 새롭게 해석시킬 새로운
공감각이라도 만들어진 것인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순신, 그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새롭게 하거나 그의 면모를 좀
더 미분화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미분화는‘ 무엇을’의 과제며 다가서는 과정은‘ 어떻게’의 과제이다. 그리고 과정의
끝은‘ 열려진’시설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관람객 각자에게 다양한 의미가 새롭게 생성되어 울림으로 전해질 수
있는 시설이어야 한다. 기념관의 계획은 새삼‘ 무엇을 기념할 것인지’‘,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되물으며
시작된다.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
- 기 념의 대상‘: 이충무공 전서’를 편찬한 정조, 근세의 최남선과 이은상 그리고 현충사를 재정비한 박정희 모두 당대의
필요에 의해 반복적으로 이순신을 불러내었다. 대개 소환의 초점은 동일했다. 우국충정의 위대한 인간형, 보편적 효와
사랑의 인간형, 표면적인 인식이다. 난중일기는 난중에 벌어진 사실들을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다. 전투도 마치 일상의
서술처럼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단 한 번의 오류도 허락할 수 없었던 무오류의 인간형이 보이는 철저함이
들어있다. 한 걸음 더 다가서야 알 수 있는 중간 층위의 인식이다. 미움과 모략을 비롯한 온갖 인간사의 국면들과
역사의 역동적인 갈등들을 대면하며 그 모든 상황에 맞서 싸우는 절대 고독의 인간형. 인간의 진정성을 드러내며
관람자와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울림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깊은 층위의 인식이다.
- 기념의 방법: 기념관에 나열된 자료는 과거의 기억이며 역사적 체험을 불러오기 어렵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각종
재현은 때로 허황되고 대상을 그저 볼거리로 퇴행시킨다. 상상력의 추동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보는 것을 넘어
앎으로의 진화는 불가능하다. 건축 그 자체가 힘을 갖게 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건축의 추상은 서사-내러티브를
과장하거나 그 서사의 구조가 예측된 구조와 너무 닮아있을 경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지 않는다. 의미의 지속적
생성을 위해 익숙한 것들의 다른 배열과 예기치 않은 것들의 배치가 유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낯설음과 거리감이
발생되고 그 속에서 익숙함에 대한 틈새, 소외 효과가 만들어진다. 소외 효과는 관람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고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 낸다.
-‘ 다중적 의미의 열린 시설’이 되기 위한 방법들: 추상적 다중성-형태로 상징하지 않는다, 공간적 다중성-과정은
있으나 강제되지 않는다, 시간적 다중성- 이순신과 교감하는 현대의 조형물들이 과거와 현재 사이를 중첩시킨다.

건축
새로운 기념관의 첫 과제는 60년 대 현충사 조성 당시의 여러 경직된 계획을 새롭게 풀어주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광역 진입로의 과도한 직선, 신정문으로 바로 밀고 들어오는
차량진입로 그리고 충무문에 이르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광장 모두에 해당된다. 특히
신정문에서 충무문에 이르는 영역의 재조정과 기념관의 배치는 깊은 상관성을 가진다.
현충사 관람 경로 상에 이순신 기념관은 다음 세 가지의 역할 모두를 담당하도록 한다.그림1
?경내 영역을 참배 한 후 만나는 기념관으로서의 역할
?경내 영역 진입 전, 방문객 안내 시설의 역할
?경내 영역에 진입하지 않을 수도 있는 빈번한 방문객을 위한 시설의 역할
- 주 진입로: 길이 250m, 폭 150m의 과도하게 열린 영역에 대한 조율이 필요한 영역이다. 첫째,
신정문을 들어서면서 주 진입로와 충무문의 전경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도록 그 폭을 제어한다.
둘째, 짙은 회화나무의 숲을 만들어 축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그 숲 사이를 통해 충무문이 점차
드러나게 한다. 셋째, 이 숲으로부터 기념관으로의 접근이 선택될 수 있도록 한다.
- 기념관의 배치그림2: 기념관의 배치는 주 진입로 상에서 새로운 기념관이 독자적인 건축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새로운 언덕’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언덕’의 하부에는 홍보, 휴게, 판매, 관리
등의 시설을 담아 주 전시 공간을 일상의 영역으로부터 격리해 내도록 한다.
- 주 전시공간의 정위(正位)그림3: 주 전시공간을 이루는 네 개의 육면체를 자오선을 따라 정확히
배열한다.(육면체의 높이(8m)는 인공구릉 위 나무의 높이(14~20m) 아래다. 진입로에서는
거리에 의해 쉽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 흙 그림4:‘ 새로운 언덕’은 띠풀로 덥히고 예리하게 잘린 단부는 화강석이다. 그 안쪽에서
정위(正位)를 이루고 있는 주 전시 공간은 7m를 넘는 판축의 두터운 흙벽이다. 흙벽은
세월에 마모되고 금이 갈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때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이순신의 의미를
되묻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사 속의 이순신이 아닌 살아있는 이순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 이종호, 사진: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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