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다운 공간환경

  현재 쌈지길이 있는 곳은 인사동길 중간지점에 자리한 옛 영빈가든(마당이 있는 한옥으로 된 갈비집)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동측으로는 철종의 부마였던 박영효대감의 집터(현재 경인미술관)와 접해 있고 남측과 북측으로는 1940-5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 골목길과 함께 자리한 곳으로 인사동지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역사환경지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1년에 이곳이 한 건설회사에 팔리면서 도로변에 있던 12개 가게가 헐리고 대형건물로 재개발될 상황이었다. 약 450평이라는 제법 큰 규모 때문에 높고 큰 건물이 지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12개 가게 주인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1만5천명의 반대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그 가운데 쌈지의 천호균 대표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지금의 쌈지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건축가 최문규의 설계로 연면적 약 14,000평의 지상4층, 지하2층 건물이 200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현재 70여개의 전통문화 ․ 공예품 등의 작은 점포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사동길에 면하여 12개 가게가 다시 입주하여 인사동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쌈지길을 ‘좋은 환경’의 사례지로 선정한 사유는 이곳이 건물을 위한 건물에 의한 공간환경이 아니라 인사동이라고 하는 독특한 지역과 환경특성에 순응한 건축을 통해 인사동다운 공간환경으로 재탄생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사동의 도시공간적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지구라고 하는 묵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와를 얹은 한옥이라고 하는 건물에 집착하지 않고, 길과 길로 이루어진 인사동의 특징을 살려 그 길을 수직적 형태로 쌓아 올린 형태(건축가 최문규의 말)로 만들어졌다.

  둘째, 인사동 필지와 길과의 관계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쌈지길에 있는 70여개의 점포는 인사동길의 작은 12개 가게와 같은 점포들을 연상케 한다. 만약 쌈지길이 일반적인 중대형점포 몇 개로 채워졌었다면 쌈지길은 걷는 느낌이 크게 달랐을 것이다.

  셋째, 인사동 골목길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작은 골목길을 통해 인사동 곳곳이 연결되듯이 쌈지길의 첫걸음길(1층)을 시작으로 두오름길(2층), 세오름길(3층), 네오름길(4층)을 통해 하늘정원으로 거침없이 연결된다. 또한 인사동길을 통해 쌈지마당으로 들어올 수 있고, 옆으로 난 통로를 통해 탈방골목과 수도약국 골목으로 나오고 들어올 수 있다. 이는 쌈지길에서 조망되는 시각적 통로와도 연계된다. 쌈지길을 오르며 반대편 점포와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인사동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하늘도 보이며, 4층에서는 북악산도 바라다 보인다. 건물에 지붕을 씌우지 않고 사계절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도 인사동골목길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넷째, 인사동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적 깊이가 유사하게 느껴진다. 사실 450평이라는 인사동에서는 넓은 면적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4층 높이에 아늑한 쌈지마당, 2미터 정도 되는 통로 등 각 공간의 스케일감이 좁지만 아늑한 인사동답게 한다.

물론 한옥과 작은 골목길이 없이 쌈지길같은 건물로만 이루어진 인사동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수백년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인사동길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켜로서 쌈지길은 인사동에서만 만날 수 있는 좋은 공간환경으로 기억된다.

김혜란_제이씨기술사사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