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콘텐츠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TOP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창조길 /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 436번지내

|

  

압구정 창조길

   

서울의 대표적 고급 아파트 단지인 압구정 현대아파트,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강남의 대표적 요지여서,

단지 아파트값이 비싸서도,

대형 평형위주의 부자들만의 아파트촌이어서 만도 아닐 것이다.

 

도시민의 삶을 영위하는데, 무언가 매력적인 것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나날이 기능 분화된 도시 속에 살기를 강요받는 요즈음,

모더니즘의 극단적 결과인 이 6000여 세대의 이 아파트 단지 깊숙이

단지 내 길변을 따라 펼쳐져 있는 작은 상가들,

주민은 그 길을 거닐며 간단한 쇼핑과 휴식을 즐기고 있다.

설사 이러한 정취가 그들만의 배타적 공간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나도 한번 끼어보고 싶은 욕심을 내게 만든다.

 

더욱이 이 속에는 작지만 우리의 예전 모습과 흡사한 재래시장까지 갖추고 있다.

 

단조롭지만,

주거를 담당하는 아파트가 있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훌쩍 커버린 나무들과

그리고, 작은 상가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곳이다.

그것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단지 내 생활가로!

기능 분화로 철저히 단절된 삶속에

이런 정도의 정취만으로도 반가운 것은

요즈음의 도시 환경 개발의 경직성을 반추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감이 아닐까 싶다.

 

도시의 삶은 여러 것들이 적절히 섞여 있기를 원한다!

  

윤승현_건축사사무소 인터커드 소장




느슨한 경계와 시간의 풍경이 만드는 일상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 속에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고급주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현대아파트,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뚜렷한 이유 없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배타적인 공간으로만 생각해왔다. 고급 주거지가 흔히 갖게 되는 경계부의 경직성은 나 같은 소심한 보행자들을 주눅 들게 한다.

 

  아파트단지의 내부와 외부가 적절히 뭉뚱그려지고, 외부인에 대한 철저한 여과장치가 심하지 않은 창조길의 이러한 느슨한 경계부에서 느끼는 첫 감정은 편안함이다. 제복을 입은 사람이 달려와서 어디 가는 거냐고 따져 묻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 말이다. 이러한 즐거운 반전은 다른 곳이 아닌 그 유명한 현대아파트를 가로질러 느린 템포로 걷고싶게 끔 한다.

 

  최근 주상복합건물과는 다르게 이곳의 연도형 상가는 주동과 분리된 별도의 건물로 지어졌다. 따라서 주동의 높이가 주는 위압감은 완화된다. 오래되고 낮은 건물이 주는 친숙한 스케일감 역시 가로의 온화한 성격에 기여한다. 또한 아파트 나이에 비례하는 키높은 은행나무 가로수와 아파트 주동 사이에 조성된 녹지대의 숲이 이루는 두 겹의 수목 캐노피는 상업가로의 재미와 더불어 숲길을 걷는 듯 한 운치까지도 선사한다.

 

  길거리를 따라 형성된 상점들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재래시장도 느닷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이곳이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그다지 내세울게 없는 오래된 일상의 풍경이 오히려 귀해지기 때문 인가보다. 아파트라는 딱딱한 주거문화의 법칙이 유쾌하게 어긋난 것 같은 재미가 느껴져서 인가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 갈증보다는 익숙한 것들에 대한 고집스러운 애착이 느껴져서 인가보다.

 

김아연_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생활공간으로서의 압구정 상가

 

  “강남의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 한 가운데는 한강 르네상스의 수혜주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있다.”라는 신문기사를 봤을 때,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뭔가 비정하고, 모던하고, 좀 얄미운 뺀질뺀질한 구석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압구정 주민에게는 강남일대가 아무리 막혀도 자기들만 아는 길이 있다. 논현로1길은 한강과 평행하게 성수대교에서 동호대교를 지나서 현대고등학교 쪽으로 가는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도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현로1길을 자동차가 아니라 실제로 걷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든다. 때때로 자동차들이 밀리는 상황도 연출되지만, 걷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양쪽의 2층의 상가들이 모여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내부 가로 논현로1길은 내가 아파트 숲에 있다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해준다. 실제로 가로를 걸으면서 아파트가 밀집지역이 아니라 강북의 생활가로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선 24시간 편의점에서 한약방까지 다양한 생활 중심의 상점들로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m 내외의 휴먼스케일의 가로 폭은 자유롭게 가로를 횡단할 수 있는 정도라, 가로 전체가 하나의 장소로 느껴진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인데도 외곽의 압구정로와 비교하여 그렇게 모던하지 않은 간판들이 즐비하다. 아마 이용자들이 한정되어 있기에 매출이 그렇게 높지는 않기에 간판들도 그다지 변화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점 용도의 다양성, 인간적 가로폭, 그리고 제한된 이용객들로 인한 화려하지 않은 외관 등이 지금의 논현로1길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양승우_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오래된 동네의 흔적 ... 압구정 상가길

 

  오래전,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성행하여 원두커피를 들고 다니며 즐긴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1990년대 초반인가 조금은 사치스럽게도 커다란 미제 캔 안에 들어있는 원두커피를 살 수 있었던 유일한 가게가 있던 곳.

 

  강남 개발의 열풍과 함께 무척이나 넓은 길들과 이제 막 심은 초라한 가로수들의 대조가 극명했던 풍경들 속에서 그나마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즐기며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을 들락날락하며 걷는 맛이 있었던 곳.

 

  그렇다. 그때 만 해도 단독주택에 살던 탓에 엄청 높은 아파트 숲으로 기억되는 압구정에서 가게들로 길게 이어진 이 길을 걷는 맛을 잊고 있었다. 높거나 넓은 공간으로 채워져 이제는 인사동, 삼청동에나 가야 걷는 맛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20미터 남짓 좁고 긴 압구정 상가길이 이제는 옆에 늘어선 아파트를 가릴 정도로 커진 은행나무로 인해 더욱 아늑해진, 넓은 땅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아파트와 차량의 물결 속에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같이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오래된 생활공간이다. 더 넓고 더 높아지려는 도시의 욕망과 낡은 것을 없애고 만들어진 새 것만이 대우받는 요즘 풍토에서 흔히들 ‘향수’라고 하는 은은함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사람을 압도하는 스케일에선 알 수 없는 인간다운 공간의 크기와 삼십년 이상 같은 자리에서 야채를 파는, 커튼을 만들어주는 동네가게 주인장들을 만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이다.

 

유석연_서울시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