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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공원 / 서울시 영등포구 노들길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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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층을 읽는 땅_장소성과 기억

 

  한강 하류상의 몇 안 되는 섬이며,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조망, 정수장이라는 독특한 기능 등은 서유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자원이므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정수장 기능의 핵심공간인 지하수조 부분에 주목하고 그 공간을 드러내어, 공원의 활동을 담고 주제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재활용하였다. 섬 외부에서 볼 때 지나치게 돌출되어 섬의 미관을 해치는 몇몇 건물들은 철거하되 그 자리를 수목으로 대치하여 장소의 흔적을 살리면서 현재의 시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물을 저장하고 정수하고 공급하기 위한 공간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에 있었다. 물과 설비가 차지했던 이 공간을 드러내어 활동과 주제를 가진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땅 밑 과거의 시설들과 그 위에 조성된 시설들은 다양한 자치를 통해 물리적으로 연결된다. 두 요소는 서로 극명하게 대립되지만 여기에서 시간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부지 상단과 하단은 거대한 옹벽으로 인해 동선 및 시설이 단절되어 있다. 한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옹벽일부를 절개, 시선의 축을 만들어 한강의 극적인 조망을 부지 깊숙이 끌어들인다. 선유도의 북서측 호안은 강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퇴적물에 의한 다양한 식물상이 전개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여 지금의 콘크리트 호안이 생태적 지속성을 이루도록 기반을 조성한다. 부지의 낮은 단을 이루는 둔치는 정기적인 침수에 의한 전형적인 하천변식생구조를 가진다. 습생초지를 일부 조성하고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그 생태적 지속성을 유지하게 한다.

 

  시설을 덮고 있는 지상부보다 그 하부 구조의 활용에 중점을 둔다. 건축적으로 독특한 구조를 가진 침전지, 여과지, 송수실, 취수장의 건물을 활용하여 각각 수질정화원, 방문자 안내소, 한강전시관, 전망대 기능을 가진 카페테리아 ‘나루’로 활용되었다. 부지 안팎의 조망과 경관을 저해하는 건물들은 철거하여 그 폐자재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그 자리에 기둥을 상징하는 나무들을 심어 장소에 대한 기억을 남기게 했다. 하부에 거대한 수조를 가진 이들 정수장의 핵심공간을 활용하여 녹색기둥의 정원, 수생식물원, 시간의 정원 등 다양한 소주제를 가진 정원이 인상적이다

 

신현돈_조경설계사무소 서안




 

 

 

 

 

사용자를 위한 공원

 

  선유도 공원은 그 곳의 오래된 흔적과 세월에 잘 어울리도록 건축물의 형상과 외관, 수종의 선택과 자연스런 배식 등이 배려된 참 좋은 공간 환경이었다. 진입공간은 도시의 번잡함을 벗게 던지는 상징공간으로서 참 기분 좋은 장소였으며, 다층구조의 내부동선은 공간의 깊이를 더하는 내밀함이 돋보였다. 이는 비교적 손쉽게 도시의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천혜의 위치와 입지특성을 살리되, 개발중심논리를 배제한 친환경 조성의 의지로 뭉친 다양한 전문분야간의 진지한 협업과 설득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공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니, 선유도 공원이 마음먹고 가야 하는 장소인 것에 비하여, 마음 풀어 놓고 오래 머무를 장소로서 다가오지는 않았다. 공원 구석구석 까지 계획가의 의도가 쉽게 드러나, 사용자를 계도하려는 듯 한 부자연스러움과 사용자 뜻에 맡겨지는 여백공간의 부족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예정된 코스를 돌고나니 할 일 다 한 것처럼 곧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도시공원을 조성함에 있어, 도시민의 정서적 해방구로서의 역할이 우선 배려되어야 할 덕목이라면, 사용자에게 좀 더 많은 공간이용의 선택 기회가 돌아가도록 재고해 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한강 한 가운데 위치하면서도 수변의 이용이 상당히 제한되거나 소극적인 듯 한 선유도공원에 수로를 이용한 진입시설과 수변 이용시설 등을 활용하면 여백공간의 외연을 넓히는데 도움이 될 듯도 싶다.

 

정경상_도시건축 소도 대표




 

 

 

 

 

골동품과 공공공간

 

  선유도공원을 답사한 일행 모두가 공감한 것이 있었다. 공원이 예상 이상으로 좁다는 점이었다. 대부분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한결같이 “처음 왔을 때는 훨씬 넓은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선유도공원이 두 번째 가면 훨씬 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이 공원이 처음 찾아온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유도공원의 면적은 11만 평방미터로. 서울 효창공원과 비슷하고 사직공원의 절반 만하다. 넓지 않은 공원이어도 처음 찾은 순간 받는 공간감은 그 면적보다 훨씬 크고 입체적이다.

 

  어느새 문을 연 지 8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이 공원만큼 장소의 변신과 재활용을 보여주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용도를 다한 산업시설의 모습을 살려 공원으로 바꾼 컨셉, 그 컨셉이 실제 주는 시각적 충격은 2002년 당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도 이 공원을 처음 찾는 이들은 여전히 놀라움을 느낄 것이다.

 

  다시 찾아간 선유도공원은 처음 봤을 때의 새로웠던 느낌은 줄어든 대신 그 사이 흐른 시간 속에서 더욱 숙성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들에도 이젠 제법 연륜이 생겨난 모습이었다.

 

  한층 그윽해진 선유도공원을 돌아보면서 생각해보게 된 것은 시간의 상대적 길고 짧음에 대해서였다. 선유도에 정수장이 생긴 것은 1978년이었다. 그리고 정수장이 문을 닫은 것은 2000년이었다. 선유도가 정수장이었던 기간이 22년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놀라웠다. 22년은 길다고 보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기간이다. 정수장 기간이 줄잡아 20년이라면, 그 뒤 공원이 된 지 대략 10년이 되어간다. 정수장이었던 기간은 의외로 짧고, 공원으로 변신한 지는 의외로 오래다. 겨우 20년이지만 이 공간에게 그 20년의 흔적은 얼마나 컸던가. 반면 20년이 아니라 2000년 된 흔적이라도 그걸 지워버리는 것은 또한 얼마나 쉬운가. 20년 밖에 안 된 것을 남겨둔 결과 이렇게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을 보면 땅에 담긴 시간이란 것은 정말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는 것임을 실감하게 된다. 선유도공원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가까운 과거를 다시 바라볼 것들을 제안하는 곳이다.

 

  골동품 업계에서는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이 30년쯤 된 물건들, 그러니까 한 세대 전 것들이라고 한다. 골동품이라고 하기에는 오래되지 않은 탓에 비교적 흔하고, 그래서 아무도 따로 보존하려 생각하지 않는 사이 다 사라져버리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도, 땅도 마찬가지 같다. 선유도 답사는 겨우 한 세대도 이어지지 못하는 공공공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들어서고 있는지 새삼 확인하는 동시에 그런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문화적 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구본준_한겨례신문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