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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언터처블 하트)

위 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1568-1
용 도 제1종 근린생활 시설 
대지면적 5071 m2 지상층수 1
건축면적 1592.93 m2 지하층수 1
건폐율 31.4 %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연면적 1731.17 m2 용적율 34.1 %
작품설명 대지는 제주 북동쪽 해안가 마을 동복리 끝자락에 있다. 유달리 바람이 많아 나무와 들풀이 육지를 향해 누워 자라던 해안가 언덕에는 두 동의 창고가 무심히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1982년 냉동 창고로 지어진 후 이런저런 사연으로 오랜 시간 방치되었던 이 폐허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적막함에 매료되었다. 재생 프로젝트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새로이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나는 이 폐허가 안겨준 감정을 부여잡고 싶었다. 그리고 건축으로 새롭게 구축될 서사는 장소의 감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이 폐허를 다시 오늘과 만나게 할 것이라 믿었다.

대부분의 재생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철거가 가장 먼저 이루어졌다. 한 번 손대면 두 번 다시 제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기에 철거는 항상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것들이 의미 있어 보이는 한편 장식처럼 무의미하다. 가장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믿는 수밖에 없다. 나는 건물의 절대적 크기가 주는 압도적 공간감과 이를 고조시키는 라멘구조의 규칙적 반복이 그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새로이 만들어낸 공백은 건물 길이 방향 전체로 연속된 낮은 개구부를 통해 바다의 수평선과 만나게 되고 전면의 높은 개구부는 하늘을 담아낸다. 두 번째 건물의 경우에도 원칙은 같았다. 내부 칸막이벽은 차라리 조각에 가깝게 다뤄졌다. 다만 2M 간격으로 배치된 지붕 트러스와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은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시멘트 바닥을 뚫고 언젠가부터 자라난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이 장소는 때때로 비와 바람과 빛이 넘나들고 바다가 보이지 않되 아득한 파도 소리로 그려지는 적막한 폐허로 의도될 수 있었다.

사업주가 설정한 용도는 휴게음식점을 포함한 복합문화시설이었다. 설계 초기에 두 창고 건물을 갤러리를 기본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를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카페와 베이커리를 수용하는 건물을 신축하는 큰 방향이 결정되었다. 그는 두 갤러러가 공간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건축이 되길 희망했다.

설계과정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구축하는 시도였다. 나는 내가 매료되었던 폐허의 적막함이 철거와 재구축이라는 건축의 개입작업 후에도 여전히 장소의 감각으로 관람객들에게 발견되길 바랐다.

내가 설정한 주제는 폐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것으로 두 건물에 걸쳐 계획된 시퀀스를 통해 서사화되도록 의도하였다. 무한한 척도의 바다 수평선,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인 하늘, 낯설게 하는 압도적 공간감, 시간의 유한함을 드러내는 오래된 재료의 물성, 찰나의 날카로움으로 빛나는 금속, 방향을 잃게 만드는 숲. 대지의 환경과 건축의 공간을 이러한 다양한 상징들로 치환하였고, 시퀀스 곳곳에 매복된 반사유리는 배경과 함께 관람객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처럼 배경이 변화하는 시퀀스를 따라 자신의 모습을 상징화된 배경과 함께 스스로 의미 짓는 경험이 공간을 구축하는 뼈대로 발전하였다. 더욱 정교한 구성을 위해 반사유리는 그 설치된 환경의 조도 차이에 따라 배경의 반사/투과/중첩 효과가 조절할 수 있도록 인공조명과 함께 계획되었다.

나는 상업건축의 목적은 상업적 성공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상업적인 프로젝트가 여러 의미에서 건축가의 이상을 펼치기에 부적절한 필드일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하게 기획된 상업적 장치들로 치환된 건축의 어휘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이 항상 저급한 취향의 것일 이유는 없다. 같은 관점에서 나는 오늘의 상업건축이 흥미로운 변화에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주도하고 자본이 수용하는 이 변화에서 과연 건축가는 어떠한 가능성 펼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작업이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처럼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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