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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 HOUSE

위 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133-52
용 도 단독주택  제2종 근린생활 시설 
대지면적 373.7 m2 지상층수 2
건축면적 262.6 m2 지하층수 1
건폐율 71.49 % 구조 연와조 / 일부 철골보강
연면적 450.98 m2 용적율 112.64 %
작품설명 [구로공단의 부침에 따른 가리봉동의 변화]
본 사업부지인 가리봉지역은 1960년대 까지 도시라기 보다는 조용한 농촌지역이었다. 그후 1960년대말 70년대 초까지 형성된 구로공단지역이 형성됨으로써 가리봉은 젊은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소비하는 구로공단의 배후 주거지가 되었다. 1970년대 고도성장을 구로공단이 주도하면서 가리봉은 젊은 노동자들이 하루일을 마치고 즐길수 있는 나이트클럽(약 6곳)과 분식집, 술집 등이 집중 되었고, 80년대에는 비교대상이 명동일 만큼 사람도, 유흥업소도 발달한 지역이었고, 84년도에는 강남보다 집값이 비쌋다는 주민들이 증언이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구로공단이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그에따라 가리봉지역의 상가들은 다양성과 활기를 잃게 되었다.

[노동자의 벌집에서 중국동포의 쪽방으로]
1970년대 초부터 가리봉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주택난이 심화되어 갔고, 1970년대에는 단층이었던 집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2층으로 증축되기 시작한다. 1984년에 다세대주택 제도가 도입되면서 벌집은 더욱 본격화 된다. 구로공단 종업원들에게 셋방을 놓기위한 다세대주택의 수요가 많던 가리봉동 지역의 당시 딸값은 강남지역과 같았다고 한다. 공단 배후지였던 가리봉동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는 방 하나, 부엌 하나, 공동화장실로 특징 지워지는 벌집이고 본 사업지의 주택은 그 대표적인 형태였다. 1990년대 구로공단이 쇠퇴 한 이후로 벌집의 거주자들은 한국인 노동자에서 중국동포들로 바뀐다. 한국에 돈을 벌러온 열악한 주거환경보다 저렴한 임대료가 중요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2003년 가리봉지역은 균현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2014년 해제 될 때까지 신축은 물론 대수선등 일체의 건축행위가 금지되었고, 주거환경개선이 이루어 질 수 없는 틈을 타서 가리봉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열악한 주거환경과 가장 저렴한 임대료로 중국동포들의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도시쟁생의 모범사례가 되길 바라며...]
2014년 재정비촉진지구 해제외 동시에 이 지역은 도시재생 사업지구로 선정 되었다. 기존 서울의 오랜도시들이 전면 철거 후 개발이라는 공식에 따라 여러 문제를 낳고 있는 시점에서 도시재생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재정비 촉진지구로서의 10여년의 진행과 무산은 가리봉동 주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일부 주민들은 도시재생보다 종상향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무렵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사업지 건물은 물려 받은 건축주 자매는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을 하였고, 건축가로서 나는 16만명의 상근인구가 있는 구로/가산 디지털 단지에 인접한 가리봉동의 가능성과 도시재생사업의 성공사례등을 논리로 건축주를 설득하여 리모델링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 건물 1층을 건축사무소로 사용하고 있다. 입주다의 대부분은 구로 및 가산 디지털 단지의 젊은 근로자이고 현재까지는 공실없이 목표 수익률을 맞추고 있다. 뉴타운등 철거후 전면 재개발에만 익숫한 주민들에게 이 주택의 사례가 하나의 모벙니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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