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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 수졸당 | 守拙堂

위 치 서울 강남구 논현동 102-14
구 분 신축
용 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234.40 m2 지상층수 2
건축면적 117.54 m2 지하층수 1
건폐율 50.15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연면적 195.50 m2 용적율 68.24 %
외부마감 외벽: 외단열 시스템
바닥: 콩자갈, 석재, 목재
내부마감 천장: 한지
벽: 한지
바닥: 한지장판지, 온돌마루
작품설명 수졸당 守拙堂
오랜 도시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은 건축물들이 이땅을 빼곡히 메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이 여전히 세계의 건축과 괴리를 느끼게 하고 있음과, 한국문화의 중심에서도 멀리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른 몇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수 십년 간 우리사회 구조를 지배한 잘못된 정치행태 이기 때문이기도 하며, 더불어 균형 잡히지 못한 富의 축척에만 몰두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가치가 왜곡된 그런 사회에서 빚어지는 건축의 모습은, 더 높이 만, 더 크게 만, 더욱 위엄 있게 만 보이기 위한 것들에 더욱 큰 관심을 두게 하였고, 그 결과 그 속에서의 삶의 의미는 무시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갑자기 축적된 부가 헛된 장식과 구호에 쏟아 부어진 결과, 거리를 메운 건축은 찬란하되 껍데기뿐이었고 화려하되 졸부의 헛된 욕망을 나타내는데 만 골몰하였음에 우리의 삶은 자꾸만 일그러지고 또한 박제될 그러한 위험에 처해 있음도 아울러 직시해야 한다. 우리네 이조의 선비들이 빚은 도시와 건축은 어떻게 저 토록 높은 격조와 품위를 가졌었나. 그것의 바탕은, 물질보다는 정신에, 욕정보다는 이성에 더욱 큰 가치를 둔 청빈의 정신이었을 터이며, 그의 위에선 선비정신은 조선 500년을 지탱케 하며 우리의 뿌리가 되어 있음을 다시 기억해 내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기의 땅보다는 남의 것을 더 채워주려 하고, 보다 작은 땅을 점유하려 하며 그것도 남과 같이 쓰기를 원하는 그런 염치와 절제의 건축을, 사회와 고립된 높은 벽체로 싸인 그림 같은 집이 아니라 이웃과 연결된 보다 낮은 그런 집을, 육신이 편안하기 보다는 정신이 맑기를 원하며 육체를 왜소화 시키는 기능적인 집보다는 오히려 反기능적 이어서 삶 자체가 진솔해지는 그런 공간을, 우리로 하여금 사유케 하고 스스로를 반추 시키는 배경이 되는 그런 知的 벽면을, 이제 우리의 도시에 다시 세워야 함을 믿는다. 이 아름다운 산하와 반만년 역사를 이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 저런 못난 건축 속에서 그 질을 보장 받을 수 없다. 세기말을 앞둔 지금, 그러한 일그러진 편린과 대립해야 하는 우리의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것은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이 된다. 보잘 것 없는 집'이라는 뜻의 이 집은 名著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를 위한 집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 교수는 한국 미술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미술평론가이며, 또 그는 민중의 삶에 애착을 가진 知性이다. 그는 나에게 설계를 의뢰하기까지 여러 번 망설였다고 한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대한 불신 등이 그러한 망설임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를테면 비싼 것, 편하지 않은 것 등이 그것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것이 선입관념 일수 있음을 알고 나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설계를 의뢰하였으며 동시에 나의 건축적 의지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고,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제가치가 우선된 토지, 주거 정책으로 인하여 크게 잘못된 주택관을 가지게 되었는데 주택을 사용에 대한 관념보다 소유개념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으로 그 결과 집속의 공간이나 그 속에서의 삶 보다는 집을 구성하는 벽체와 지붕의 모양등에 더욱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얻어진 주거형식이라는 것이 주어진 필지에 높은 담을 쌓고 자기를 보호 받기 위해 그 담 위에 철조망을 또 두르고 그 속에 아파트처럼 기능적인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부분은 `저 푸른 초원'을 즐기기 위해 잔디 깔고 나무 심는 그러한 것인데, 이러한 집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이웃이 있을 턱이 없고, 가족의 아이덴티티가 있을 수 없으며, 더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 또한 오히려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와지붕 시대 이후의 참다운 주거문화를 실현해 본적이 없으며 오로지 주택이 가족 신분에 대한 상징으로서 여겨져 온 결과 껍데기만 있는 졸부의 주거문화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집장사와 개발업자들에게 상당 부분 있지만, 그렇다 하여 건축가들의 책임 또한 면하기 어렵다. 내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가진 의문문은 다음과 같다. - 우리는 다시 도시주택의 전형을 만들 수 없을 것인가. - 주택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 주택에서 삶의 형태와 공간의 형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 주택은 기능적이어야 하나. - 이 시대는 어떤 주거형식을 요구하는가. 이 집이 완성되면서 이러한 의문문이 얼마만큼 그 해답을 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성취한 몇몇은 요즘 나의 건축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는 貧者의 美學에 대한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였고, 그 성취는 대부분 유교수가 전적으로 건축가를 신뢰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며 그와 설계와 시공기간 중 내내 나눈 여러 이야기들이 오래 기억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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